의료 감수: 박석민 한의사 (대표원장)
섬유근육통은 왜 아플까 — 중추감작과 말초감작으로 본 통증의 원인
목차
섬유근육통은 검사를 해도 뚜렷한 손상이 안 보이는데 온몸이 아픕니다. 그 수수께끼의 답이 바로 '감작(sensitization)', 즉 통증 신호가 과하게 증폭되는 현상에 있습니다.

섬유근육통은 전신에 걸친 만성 통증과 피로·수면장애·인지저하를 동반하는 질환입니다. 그런데 X-ray·MRI·피검사를 해도 통증의 크기를 설명할 만한 손상이나 염증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핵심은 '아픈 부위'가 아니라 '통증을 처리하는 신경계 자체'가 달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2026년에 발표된 통증 리뷰 논문을 통해, 섬유근육통의 병리적 원인을 '말초감작'과 '중추감작'이라는 두 축으로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다소 전문적이지만, 이 기전을 이해하면 '왜 소염진통제가 잘 안 듣는지', '왜 운동과 수면이 중요한지'가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이 글은 통증 병리·진단·치료를 다룬 1990~2025년 문헌을 체계적으로 추려 분석한 리뷰를 토대로 합니다. 아래는 그 문헌 선별 과정을 정리한 그림입니다.

통증에도 종류가 있다
통증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발생 기전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침해수용성 통증입니다. 칼에 베이거나 관절에 염증이 생겼을 때처럼, 실제 조직 손상이 통각 수용체를 자극해 생기는 통증입니다. 손상 정도에 비례하고, 원인이 사라지면 가라앉습니다. 둘째는 신경병증성 통증으로, 신경 자체가 다치거나 병들어 생깁니다. 화끈거리거나 전기가 통하는 듯한 통증이 특징입니다. 셋째가 바로 통각가소성 통증(nociplastic pain)입니다. 2017년 국제통증학회가 새로 정립한 개념으로, '뚜렷한 조직 손상이나 신경 병변 없이, 통증을 처리하는 신경계의 조절이 달라져서 생기는 통증'입니다. 섬유근육통이 바로 이 통각가소성 통증의 대표 질환입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종류마다 치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침해수용성 통증에는 소염진통제가 듣지만, 통각가소성 통증에는 잘 듣지 않습니다. 원인이 '염증'이 아니라 '신경계의 증폭'에 있기 때문입니다.
섬유근육통의 정체 — '염증 없는 통증'
흥미롭게도 섬유근육통은 한때 염증 질환으로 여겨졌습니다. 1904년 영국 신경과의사가 섬유조직의 염증이라는 뜻으로 '섬유조직염(fibrositis)'이라 불렀고, 이 용어가 수십 년간 쓰였습니다. 그러나 1970~80년대에 들어 '염증이 없는데도 통증이 지속된다'는 관찰이 쌓이면서, 중추신경계가 통증의 주역이라는 가설이 떠올랐습니다. 1970년대 중반 '섬유근육통'이라는 이름과 '압통점(tender points)' 개념이 도입되며, 초점은 가상의 염증에서 통증을 처리하는 신경계의 변화로 옮겨갔습니다. 즉 섬유근육통의 본질은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통증 처리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말초감작 — 통증의 시작점에서 벌어지는 일
감작은 크게 말초와 중추 두 곳에서 일어납니다. 먼저 말초감작은 통증이 시작되는 조직·말초신경 끝에서 벌어집니다.
조직이 손상되거나 자극받으면 그 자리에서 여러 화학물질이 쏟아집니다. ATP, 브래디키닌,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프로스타글란딘(PGE2), 신경성장인자(NGF), 신경펩티드인 서브스턴스 P, 그리고 국소적인 산성화 등입니다. 이 물질들은 통각 수용체의 문턱을 낮춰, 약한 자극에도 쉽게 통증 신호가 켜지게 만듭니다. 이 과정의 중심에는 TRPV1(열·매운맛 감지 통로), Nav1.7~1.9(전압의존성 나트륨 통로), Piezo(압력 감지 통로) 같은 이온 통로가 있습니다. 또한 서브스턴스 P와 CGRP 같은 신경펩티드는 '신경성 염증'을 일으켜 혈관을 확장하고 면역세포를 끌어들입니다.
여기에 통각 신경과 면역세포가 서로를 자극하는 양방향 고리가 더해집니다. 염증성 사이토카인인 종양괴사인자(TNF-α)와 인터루킨1β(IL-1β)는 세포 안의 신호 효소(PKA·PKC·MAPK)를 켜고, 특히 p38 MAPK는 TRPV1의 활동을 높여 과민 상태를 굳힙니다. 이렇게 말초에서 통증 신호가 끊임없이 올라오면, 그 입력이 다음 단계인 중추감작의 불씨가 됩니다.
중추감작 — 척수와 뇌가 통증을 증폭한다
섬유근육통의 핵심은 중추감작입니다. 국제통증학회는 중추감작을 '중추신경계의 통각 신경이, 정상이거나 약한 자극에도 과하게 반응하게 된 상태'로 정의합니다. 쉽게 말해 통증의 볼륨이 비정상적으로 커진 것입니다.
말초에서 통증 신호가 지속적으로 올라오면, 척수 뒤쪽(후각, dorsal horn)의 신경이 점점 흥분하기 쉬운 상태로 바뀝니다. 흥분성 신호물질인 글루타메이트와 서브스턴스 P가 늘고, 이를 받는 NMDA·AMPA 수용체가 활성화됩니다. 그 결과 같은 자극에도 점점 더 큰 통증으로 증폭되는 '와인드업(시간적 가중)' 현상이 나타나고, 통증을 느끼는 영역(수용야)이 실제 자극 부위보다 넓게 퍼집니다. 처음엔 한 곳이 아프던 것이 점차 온몸으로 번지는 이유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브레이크'의 고장입니다. 정상이라면 통증을 가라앉히는 억제 장치들이 작동합니다. GABA·글리신·아데노신·내인성 오피오이드·카나비노이드 같은 억제 신호물질, 그리고 뇌에서 척수로 내려오는 하행성 통증 억제 경로(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이 매개)가 그것입니다. 섬유근육통에서는 이 억제 기능이 약해져 있습니다. 가속 페달(흥분)은 밟히고 브레이크(억제)는 풀린, 통증 증폭에 최적화된 상태가 되는 셈입니다. 실제로 기능적 뇌영상(fMRI)과 뇌척수액 분석에서 이런 통증 전달 시스템의 교란이 확인됩니다.
이 상태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대표 증상이 통각과민과 알로디니아입니다. 통각과민(hyperalgesia)은 약한 통증 자극을 심한 통증으로 느끼는 것이고, 알로디니아(allodynia)는 원래 아프지 않아야 할 자극(옷깃이 스치거나 가벼운 압력)에도 통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둘 다 신경계가 병적으로 재편됐다는 신호입니다.
신경면역 — 미세아교세포가 불을 지핀다
중추감작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는 신경세포만이 아니라 뇌·척수의 면역세포가 깊이 관여합니다. 미세아교세포(microglia)와 별아교세포(astrocyte)가 그 주역입니다.
이 세포들은 ATP, 케모카인, 서브스턴스 P, CGRP 같은 신호에 의해 활성화되어, 신경의 흥분성을 높이는 물질들을 쏟아냅니다. 특히 '프랙탈카인' 경로가 중요합니다. 효소(카텝신 S)가 프랙탈카인(CX3CL1)을 잘라내면 그 조각이 미세아교세포의 수용체(CX3CR1)를 자극해 활성화시키는데, 신경 손상 후 이 수용체가 과발현됩니다. 동물 실험에서 이 경로를 차단하면 통증 과민이 줄어듭니다. 별아교세포는 흥분성 물질인 글루타메이트를 제때 치우지 못하게 되고, 잘못된 시냅스를 만들며, TNF·인터루킨·신경영양인자를 지속적으로 방출해 통증을 굳힙니다. 즉 신경과 면역이 함께 통증의 불을 키우는 구조입니다.
말초도 무시할 수 없다 — 작은 신경섬유
오랫동안 섬유근육통은 '순수한 중추 질환'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시각이 넓어졌습니다. 2023년 이탈리아 신경학회 연구진은 섬유근육통이 중추감작 증후군이면서 동시에 말초, 특히 가는 신경섬유(small nerve fiber)의 이상을 함께 보일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즉 중추의 증폭이 주역이되, 말초에서 올라오는 입력도 통증을 부추기는 한 축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치료에서 말초와 중추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확인하나 — 압통과 정량 감각검사
섬유근육통은 한 가지 검사로 진단되지 않습니다. 통증의 특성과 분포, 그리고 신경계의 과민 정도를 함께 봅니다.
전통적으로는 압통점을 사용했습니다. 1990년 기준에서는 전신 18개의 정해진 압통점 중 11곳 이상에서 통증이 있어야 했습니다(위 신체 지도 A). 이후 2010~2016년 기준에서는 압통점 대신 통증이 퍼진 부위 수를 세는 광범위통증지수(WPI, 19개 부위)와 증상중증도척도(SSS)를 사용하도록 바뀌었고, 피로·수면·인지 증상까지 함께 평가하게 됐습니다. 중추감작의 증상 부담을 설문으로 가늠하는 중추감작척도(CSI, 25문항)도 널리 쓰이며, 보통 40점 이상을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중추감작의 지표로 봅니다. 여러 질환을 비교하면 섬유근육통에서 이 점수가 가장 높게 나타나, 중추감작이 이 병의 핵심 기전임을 보여줍니다.
객관적 측정으로는 정량감각검사(QST)와 압력통증역치(PPT) 측정(알고메트리)이 있습니다. 전자식 압통계로 '압박이 통증으로 바뀌는 순간'의 압력을 재는 방식으로, 미세한 통증 문턱 변화까지 잡아냅니다. 이 측정값들을 신체 여러 지점에서 모으면, 부위별 통증 민감도를 시각화한 '압통 지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래는 승모근(어깨·목)의 압통 측정점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팔다리 전체에도 정밀한 측정점을 배치해 압통 지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래는 하지(다리)의 측정 부위입니다.

허리(요부)에서는 척추 가시돌기(L1~L5)를 기준점으로 삼아 측정점을 배치합니다.

이런 지도들은 통증 민감도가 부위마다 균일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과민 영역이 어디로 퍼지는지를 한눈에 보여줍니다. 국소적인 통증 이상과 전신적인 과민을 구분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치료 관점 — 왜 소염진통제가 잘 안 듣나
기전을 이해하면 치료의 방향이 보입니다. 섬유근육통의 통증은 염증이 주된 원인이 아니므로, 소염진통제(NSAID)나 일반 진통제의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이 점은 거꾸로 '이 병이 염증성 통증이 아니다'라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대신 중추의 통증 조절에 작용하는 약물이 쓰입니다.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억제제(둘록세틴·밀나시프란)와, 신경의 칼슘 통로에 작용하는 프레가발린이 대표적이며, 일부 환자에서 통증·피로를 줄이고 삶의 질을 높입니다. 다만 약물의 전반적 효과는 아직 제한적이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약물에만 기대지 않고, 운동치료와 인지행동치료처럼 통증 증폭 기전 자체를 바꾸는 비약물 치료를 함께 적용하는 다학제적 접근이 강조됩니다. 실제로 운동과 인지행동치료는 약물 단독보다 기능과 삶의 질에서 비슷하거나 더 나은 개선을 보이기도 합니다. 통증의 무게중심이 '염증을 끄는 것'이 아니라 '과민해진 신경계를 다시 조율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 송도 이레한의원은 섬유근육통을 비롯한 만성 통증·자가면역질환을 오랜 기간 살펴왔습니다. 통증을 '꾀병'이나 '마음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신경계가 과민해진 실제 병리로 이해하며, 수면·운동·스트레스·전신 상태를 함께 조율하는 관리를 지향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검사상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이렇게 아픈 게 가능한가요?
A. 가능합니다. 섬유근육통의 통증은 조직 손상이 아니라, 통증을 처리하는 신경계가 과민해져(중추감작) 신호를 과하게 증폭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래서 X-ray·MRI·피검사가 정상이어도 실제로 심한 통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검사가 정상=통증이 없다'가 아닙니다.
Q. 소염진통제가 잘 안 듣는데 제가 이상한 건가요?
A. 아닙니다. 섬유근육통은 염증이 주된 원인이 아니어서 소염진통제의 효과가 원래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중추의 통증 조절에 작용하는 약물(둘록세틴·프레가발린 등)이나 운동·인지행동치료 같은 접근이 더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운동을 하면 더 아플 것 같은데, 정말 도움이 되나요?
A. 통증이 심할 땐 망설여지지만, 적절한 강도의 운동치료는 과민해진 신경계를 다시 조율하는 데 도움이 되어 약물 못지않은 효과를 보입니다. 다만 무리한 운동은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으니, 강도와 속도는 전문가와 상의해 천천히 늘려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체적인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전문 의료기관에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다음 논문을 토대로 정리했습니다. Hladkykh FV, Liadova TI, Matvieienko MS, et al (2026) Central Sensitization and Nociplastic Pain: Shared Mechanisms in Fibromyalgia, Osteoarthritis, and Inflammatory Arthritis. Journal of Pain Research.
⚠️ 본 글은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정확한 진단·치료는 전문 의료기관에서 받으시기 바랍니다.